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불법 리베이트 관련 세무조사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국세청 사진 제공 |
[4차산업행정뉴스=4차산업행정뉴스기자]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25일 의약품 업체 A사는 자사 의약품을 처방해 주는 대가로 병원 원장 부부의 고급웨딩홀 예식비, 호화 신혼여행비, 명품 예물비 수천만원을 대신 지급했다고 밝혔다.
A사는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해 병원장 및 개업의에게 전달하거나 마트에서 카드깡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해 의사에게 지급했다가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또 다른 의약품 업체 B사는 영업대행사(CSO)를 활용한 우회적 방법으로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B사는 전·현직 직원 가족 등의 명의로 다수의 위장 CSO를 설립하고, 수십억원의 허위 용역계약을 체결해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줬다.
CSO 대표에게 과다한 급여를 지급한 후 현금으로 인출해 의사들의 유흥업소 접대 등에 사용하거나, 의사들을 CSO 주주로 올려 배당금을 지급하는 지능적 방법을 썼다. B사는 리베이트 제공에 지출한 비용을 모두 회사경비로 처리해 법인세를 탈루한 사실이 국세청에 적발됐다.
국세청은 불법 리베이트 수수 행태가 만연한 의약품 및 건설·보험중개 등 3개 분야를 대상으로 고강도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25일 발표했다. 리베이트(rebate)는 판매한 상품·용역의 대가 일부를 다시 구매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를 뜻한다. 통상 일종의 뇌물적 성격을 띤 부당고객유인 거래를 의미한다.
의약품 및 건설·보험중개업은 모두 관련 법률에서 리베이트 수수 행위를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국세청은 의약품 업체 16개와 건설업체 17개, 보험중개업체 14개 등 총 47개 업체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품질 향상 및 원가 절감 등을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리베이트 비용으로 소진돼 경제·사회 전반의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국세청은 의약품 처방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의료인에게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리베이트를 제공한 의약품 업체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 대상 업체들은 결혼 관련 비용 등 의사들의 사적 비용을 대납하고, 병·의원과 의사들에게 물품 및 현금을 지급하거나, 영업대행사(CSO)를 통해 우회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과거 세무조사에선 의약품 시장의 구조적 제약 및 리베이트 건별 추적 시 소요되는 인력·시간 등의 한계로 인해 리베이트 제공업체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데 그쳤다. 의약품 시장에서 절대 ‘갑’인 의사들과 ‘을’인 의약품 업체 간 관계에서 의약품 업체는 향후 거래 중단 등을 우려해 리베이트 자금을 누가 받았는지 절대로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실제로 국세청 조사 과정에서 조사 대상 의약품 업체 영업 담당자들은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 이름을 털어놓느니 이들의 세금까지 본인들이 부담하겠다며 하소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 국장은 “이번 조사 진행 과정에서 리베이트로 최종이익을 누리는 (의사) 대상자를 파악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의약품 리베이트를 실제 제공받은 일부 의료인들을 특정해 소득세를 과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세청은 의약품 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세무조사가 최근 의대 정원 관련 정부와 의사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과는 일절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 국장은 “의약품 업계에 만연한 불법 리베이트 수수 행태에 대한 세무조사”라며 “의사들을 향한 정치적 세무조사는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건설 분야에서는 시행사, 재건축조합 등 발주처의 특수관계자에게 가공급여를 지급하거나, 발주처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리베이트 지급 혐의가 확인됐다. 특히 도급계약이 연쇄적으로 체결되는 시장 구조상 대형 건설사는 발주처에는 리베이트를 제공하면서 하도급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도 받는 이중적 행태도 드러났다. 국세청은 리베이트를 제공한 건설업체뿐 아니라 조합장, 시행사 등 리베이트를 받은 수취자도 끝까지 추적해 소득세를 과세하겠다는 계획이다.
CEO보험(경영인정기보험)에 가입한 법인의 사주 일가 등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한 혐의가 있는 보험중개업체도 이번 세무조사에서 적발됐다. CEO보험은 CEO의 사망이나 심각한 사고 발생 시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보험금을 법인에 지급하는 보장성 보험이다. 법인 비용으로 가입이 가능하다.
최근 초고가의 중개수수료를 수취하려는 보험중개법인과 법인세 및 증여세를 회피하려는 중소법인 사주들의 이해관계가 결합해 CEO보험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CEO보험 리베이트 조사 대상들은 고액의 법인보험을 판매하면서 가입법인 대표자 및 배우자, 자녀 등 특수관계자를 보험설계사로 허위 등록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이들에게 많게는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이들은 영업 과정에서 법인 비용으로 고액 보험료를 납입하기 때문에 법인세가 절감된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녀 등이 고액의 설계사 수당을 지급받기 때문에 법인자금으로 증여세 부담 없이 증여할 수 있다고 유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다른 분야의 리베이트 수수 행태도 지속해서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민 국장은 “금융추적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받으면서도 납세의무를 회피한 최종귀속자를 찾아 소득세 등 정당한 세금을 매기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조세포탈,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 등 조세범칙 행위 적발 시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검찰에 고발해 형사처벌 받을 수 있도록 엄정히 조치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