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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체육

기고/ 가수 김신 ,올해 설날에도 할머니는 일어나시지 못했습니다.

4차산업행정뉴스 기자 입력 2025.02.06 15:16 수정 2025.02.06 15:28

 

 

                      오빠가 다해줄께 가수 김신 사진


안녕하세요. 올해 막 2년차 트로트가수로 활동 중인 김신입니다. 오늘은 이전과는 다른 사연으로 글을 써봅니다.

 

작년 7월에 갑작스럽게 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 피를 흘리고 쓰려지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올해 93세이신 할머니는 고령임에도 말씀도 잘하시고 항상 정정하셨던 분이셨습니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학생들 급식 도우미를 하시며 활동하시던 할머니께서는, 최근에 실버타운에 거주하시면서 주변 어르신들과 활동도 하시면서 지내셨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 계신 실버타운에 종종 찾아뵙고 이야기 나누곤 했습니다. 특히 할머니 다치시기 전에 뵈었던 최근에는 휴대폰을 통해 제가 작년에 트로트 앨범낸 영상 등을 보시면서 ‘아이고 우리 장손이 가수가 되서 이렇게 전화기로 보니까 신기하다’ 라고 너무 즐거워하셨습니다. 

 

‘열심히 해서 꼭 유명한 가수가 되야지, 할머니 죽기전에’ 이렇게 웃으면서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할머니 제가 유명해져서 티비에 나오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라고 대답했었습니다.

 

그러셨던 할머니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 울컥했습니다. 추정컨데 할머니는 밤중에 발을 잘못디뎌 넘어지시면서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시며 쓰러지셨고 밤중에 방치된 채로 아침에 발견된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이 그려지면서 저는 순간적으로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어린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집안의 장손이었던 저는, 그만큼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저는 유치원 입학 전에 김공장을 했던 할아버지 사업으로 인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던 시골에서 지냈습니다. 

 

그곳은 그 당시에는 섬이어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으며 가로등이 없어 밤에는 손전등을 들고 나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동네에 아이는 오로지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집안의 장손인 저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동네분들에게 자랑하러 저를 데리고 다니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할머니에게는 제가 동네 자랑이었고, 저도 역시 제가 동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한다는 것을 알아서, 할머니가 동네 나가신다고 하면 항상 이쁨을 독차지 받으러 따라 나섰었습니다.

 

김공장을 하다보니 김이 많아서 항상 할머니는 저희에게 김부각을 만들어 주셨었습니다. 저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시절부터 김부각을 먹었었는데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먹었던 그 김부각이,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는 이미 입맛에 너무 익숙해져서 할머니의 김부각이 아닌 것은 김부각으로 취급도 안했습니다. 

 

김공장을 그만둔 후에도 저희가 김부각을 너무 좋아했어서 할머니는 항상 만들어주셨습니다. 성인이 되어 가정이 생기고 현실에 부딪혀 살다보니 자주 할머니를 뵙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항상 한켠에 김부각 틀을 세워놓고 저희가 간다고 할때마다 항상 저희 주시겠다고 김부각을 만들어 놓고 저희가 오면 내어주시곤 했습니다.

 

김공장 사업을 정리하고는 서울로 이사오게 되면서 저는 또 할머니와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외국에서 일하시느라 집에 계신날이 거의 없었고, 어머니 또한 일을 하시느라 저와 남동생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그때에도 항상 김을 우려낸 김물을 저와 동생에게 만들어주시며 저희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기도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계신 할머니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랑 4살 터울인 동생을 제가 돌보면서 자랄 수 있었던 건 할머니 덕분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바쁘셔서 집에 계시지 못했지만 저는 든든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매년 효행상을 탄건 할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제가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갑작스런 사고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는데 보내드린 죄송함이 제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할머니께서도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의식이 불분명한채로 누워계시니 너무 마음이 답답합니다. 항상 제가 1번이었던 할머니께서 저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누워계시는 모습을 보며 혹시나 이러다가 갑자기 돌아가실까봐 겁이 납니다. 금방 일어나실 줄 알고 있었는데, 작년 추석을 할머니 없이 보내고 올해 설날에는 일어나시길 기도했는데 설날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는 돌아오지 못하고 계십니다.

 
병원에 가서 할머니를 뵈면 정말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머리를 짧게 깍으시고 코와 입에 호스를 다신채로 손발이 묶여계신 모습을 보면 가슴이 사무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할머니의 이런 모습은 본적이 없어서 더욱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7개월째 누워계신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는 현실이,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할아버지도 아무것도 못해드리고 보내드렸는데, 할머니마저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다보니 좀더 많은 분들이 할머니의 쾌유를 기원한다면 그 희망의 마음으로 할머니께서 깨어나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방송을 통해 사연을 전해보고자 글을 썼습니다. 

 

병상에 계신 할머니께 제 목소리가 닿도록, 힘을 내실수 있도록, 장손이 응원하고 있으니 꼭 일어나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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