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연예술인노동조합 |
[4차산업행정뉴스=서정용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섰다. 온 나라가 초상집 같았다가, 손이 귀한 집안에 아기가 태어난 듯 들썩이고 설레고 있다. 하지만, 대학로는 들썩이고 설레도 되는지 조바심나는 마음을 붙잡고 애써 쓸어내리며 기다리는 중이다.
새로운 정부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우린 너무 오래 기다렸다. 도대체 몇 명의 대통령이 왔다갔는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우리는 설렜고, 조바심치다가 실망했고, 간절한 만큼 입이 썼다. 지금까지도 여태 말을 아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래도 여전히 좀 달라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우리의 입을 다물게 했고, 우리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우리는 기다리는 중이다.
역사로 치면 대략 5000년의 역사에서 그 독창적이고 빼어난 문화와 예술을 만들고 지켜온 우리에게 문화예술에 대해 할 말이 오죽이나 많겠나? 구구한 설명이 무색하다 싶을 정도로 소위 K컨텐츠의 위력은 대단한 시대이다.
누구인지도 모를 유투버로부터 예술인들의 행보를 좌우지하시는 높은 문화예술정책간부들까지 K-컨텐츠, K-문화, 뭐든 앞에 K를 붙여놓고 팔아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연일 난리라는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은 한국K-pop이 얼마나 세계적인지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찬물을 끼얹어야겠다.
그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소니픽처스가 만들었고, 노래한 가수는 한국계가 대다수지만 미국사람들이고, 이걸 서비스하는 회사는 미국의 넷플릭스다. 소재와 배경이 k-pop과 한국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놀랍게도 돈벌이로는 우리와 크게 상관도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K컨텐츠의 시대라는 과장이 그렇게 무리하지 않은 지금, 우리는 묻는다. 이 시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얼마나 갈 것 같은가?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한 시간이 1970년대로부터 50여년 정도이다. 그 결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대한민국의 산업이 이토록 발전한 이유가 산업역군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매일 수없이 죽고 다치며 착취당하면서도 사회의 재부를 생산해낸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이었듯, K-컨텐츠 역시 국가의 지원은 고사하고 기관의 검열과 감시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이 나라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예술노동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꽃피워진 것이다.
지금 예술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1970년대 버스안내양들이 근무를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오면 속옷까지 뒤짐을 당하던 치욕스럽던 그 시절과 지금 예술지원금에 대한 행태가 무엇이 다른가?
도대체 예술창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알고 예산책정 항목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 사업지원을 했다면 그 관리책임이 기관에 있는데 회계정산을 기관이 해야지 왜 예술가들에게 시키는가? 예술가들을 시키면서 왜 그에 따르는 인건비는 책정하지 않는가?
현금으로 사용할 수 없는 지원금은 왜 반드시 카드수수료를 내야 하는 카드로만 사용할 수 있는가? 이것이 과연 그 집행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가장 최선인가? 다만 행정편의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를 통해 카드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과연 소소한가?
연습과정에서 필요한 식비와 진행비 등 에 대해서는 왜 현실을 들여다보고 보완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잠재적 범죄로 간주하고 마치 덫을 쳐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영수증을 들여다보며 뒤지고 있는가? 왜 예술가들이 창작을 해야할 시간에 공무원들의 양식에 맞춰 서류를 작성하고 바쳐야하는가?
이런 행태는 예술창작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돈을 받았으면 정해준 대로만 비용을 쓰고, 그에 합당한 회계자료를 제출하라는 꽉 막히고 일방적인 행정은, 모멸감에 치를 떨며 다시는 지원금을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대단한 효과를 갖게 만든다. 하지만, 당장 작품을 만들어야하는 예술가들에게 선택의 자유는 별로 없다.
그래서 국가가 원하는 방향의 작품활동을 기획하고 준비하게 되고 국가의 문화예술정책에 반강제적으로 예술인들이 줄을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기획안이 정부의 입맛에 맞을지 초조해진다. 이렇게, 정부와 예술인들 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를 구축한다.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부서가 문체부인줄 알았는데 문체부가 아니라 기재부였다. 예산이 정책이라는 말이 있다. 나랏돈을 어디에 쓸건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책이다. 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에게 표를 던져줄 집단에게 돈을 쓴다. 그러니 재정을 쥐고 있는 기재부가 돈을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기준이 무엇이겠는가? 지금 정부에게 도움이 되는 곳에 돈을 줄 것이다.
이미 밝혀진대로 박근혜 시절과 이명박 시절에 그렇게 예술인 블랙리스트는 작성되었었다.
그때그때 예술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의 예술지원정책은 그 정부가 어떤 정부이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인들을 분류하여 지원에서 배제하는 것, 즉 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언제든 가능한 판이 짜여진 것이다. 이 판을 근본적으로 뒤집지 않는 한, 어느 정부가 들어와도 예술인들이 을인 세상이 달라질 수 없다.
먹고살 일자리를 달랬더니 노예계약을 맺자 하고, 예술 본연의 것을 지키겠다고 하니 자영업자 취급을 하는 사회. 이것이 지금 예술인들이 느끼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우리는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생기지 않는다. 이번 문체부장관의 인사를 보면 오히려 절망적이다.
예술은 없고, 산업만 지독하게 가득이다.
기초과학이 있어야 첨단과학기술 발전이 담보되듯, 기초예술이 있어야 예술산업도 그 발전가능성을 갖는다.
기초예술에 대한 어떤 지원도, 존중도, 아니 예견조차도 없는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30년 후 우리 문화에 다른 발전 가능성은 없다. 지금의 k-콘텐츠가 꽃이며 열매라면, 그 뿌리는 기초예술에 있다.
우리는 요구한다.
첫째, 지금 당장 예술현장에 맞지 않는 현행 보조금법을 개정하고, 실정에 맞는 지원금법을 제정할 것.
둘째, 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을 기초예술 현장에 발딛고 있는 예술인들을 정기적이고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할 것.
셋째, 심사를 통한 사업비 지원 중심의 예술인지원사업을 예술 발전을 만드는 예술의 주체인 예술인들에 대한 직접 지원과 그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지원정책으로 넓힐 것.
넷째, 예술지원정책을 예술인들에 대한 시혜가 아닌 지속가능한 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에서 고민하고 입안할 것.
공연예술인노동조합예술은 심사대상이 아니다. 이런 입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는다면 우리의 문화예술은 새로운 발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