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행정뉴스=4차산업행정뉴스기자] 품바란 각설이타령의 후렴구에 사용되는 일종의 장단 구실을 하는 의성어로 전해왔으나 현재는 각설이나 걸인의 대명사로 일반화되었다.
품바란 낱말이 처음 기록된 문헌은 신재효의 한국 판소리 전집 중 '변강쇠歌'이다. 여기에서 보면 품바란,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라 하여 '입장고'라 불렀음을 알 수 있는데, 이조 말기까지는 이런 의미로 통했다. 그후 일제, 해방, 자유당, 공화당 시절에 이르기까지는 '입방귀'라는 말이 널리 일반화되었는데 그것은 '입으로 뀌는 방귀'라는 뜻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피지배계급(가난한 자, 역모에 몰린 자, 관을 피하여 다니는 자, 지배계급에 불만을 품고 다니는 자, 소외된 자 등)에 있는 자들이 걸인 행세를 많이 하였는데 그들은 부정으로 치부한 자, 아부 아첨하여 관직에 오른 자, 기회주의자, 매국노 등의 문전에서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의미로 입방귀를 뀌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恨)과 울분을 표출했다.
또한 품바란 가진 게 없는 허(虛), 텅 빈 상태인 공(空), 그것도 득도의 상태에서의 겸허함을 의미한다고 전하며 구걸할 때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예, 왔습니다. 한푼 보태주시오. 타령 들어갑니다." 등의 쑥스러운 말 대신 썼다. 또, 품바란 한자의 '품(稟)'자에서 연유되어 '주다', '받다'의 의미도 있다. 또 달리 '품'이란 품(일하는 데 드는 수고나 힘), 품앗이, 품삯 등에서 연유했다.
하지만, 전해 내려오면서 명칭의 변화는 있었지만 거기에 함축된 의미가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라는 말로 변해왔으며, 이 노래(타령)만은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났을 때 반드시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렸던 것이 다른 노래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연극 ‘품바’를 탄생시킨 작가겸 연출가 김시라(1945~2001, 본명 김천동)다. 그는 55세에 심근경색으로 홀연 세상을 떠났다.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구성진 각설이타령이 시작되면 객석은 질펀한 해학과 풍자의 마당으로 변한다. 누더기 차림에 찌그러진 깡통, 벙거지를 눌러쓴 품바의 놀이판은 그 어느 공연에서도 맛볼 수 없는 김시라의 등록상표이기도 했다.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서 1945년에 태어난 그는 목포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도시락을 거르기 일쑤였고 납부금을 내지 못한 적도 많았다.
항상 못 가진 자의 편에 섰던 김시라는 천사촌으로 불리는 무안 걸인촌에서 거지 왕초 천장근을 만났다. 그리고 그를 소재로 작품을 썼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 ‘품바’는 이렇게 탄생했다. 김시라는 ‘북잽이’로 품바들을 도왔다.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낸 사회에 대한 통렬한 질타는 통쾌하면서도 가슴 저몄다. ‘품바’는 국내 ‘최다공연’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품바’는 고 함석헌 옹의 말대로 “바로 우리의 연극”이다. 시인 송수권은 “김시라의 삶은 신재효에 견줄 만하다”고 했고 소설가 최일남은 “그의 푸근한 인간성과 구수한 입담, 배꼽을 쥐는 관객의 모습은 삶의 역리와 맞닿아있고 웃음속의 눈물이 번뜩인다”고 평했다. 김시라는 한국백상예술대상(88년), 한국기독교문화대상(97년)을 수상했다.
또 자신이 개관한 소극장 ‘강강술래’와 ‘왕과 시’에서 10여 편의 연극을 공연했다. 예수처럼 길게 늘어뜨린 단발머리에 한복을 입은 김시라는 이제 동숭동 연극의 거리에 없다. 그가 구수하게 이야기한다. “자네가 왔으니 나는 갈라네”.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부인 박정재와 2남 1녀를 남기고 2001년 불귀의 객이 되었다.
유승희 연출가는 극단 단홍의 대표로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예술과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배우훈련 연극화술>,<연극화술의 이론과 실제>가 있다. 1989년 <화가 이중섭>으로 연출에 입봉한 후 <안티고네>,<굿나잇 마더>,<타인의 눈>,<백양섬의 욕망>,<막차탄 동기동창>,<총각파티> 등 약30여 편을 연출하였다. 2014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모노드라마 <드링커>를 출품하여 세계 여러 나라 관객들로부터 재미와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1995년 100만권의 판매 부수를 기록했던 소설 <뼁끼통>을 연극으로 각색, 연출하여 3개월간 대학로에 돌풍을 일으켰다, 96년에는 미국과 유럽을 강타했던 동성애자들의 애환을 다룬 <천사의 바이러스>를 연출했고, 98년에는 사회 고발극 <신의 아들>을 비롯하여, 2006년에는 청소년 문제의 뮤지컬 <스트리트 가이즈>, 손숙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것> 등을 연출 했다.
최성웅은 안양예술고등학교, 고구려대학 공연예술학과와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서울연극연기자협회 회장, 서울공연장연합회 회장, 극단 세미 대표, 한국연극배우협회 감사·부회장 그리고 한국연극배우협회 회장등을 역임했다. '밤주막', '춘향전', '아가씨와 건달들', '총각파티' 등 연극·드라마 140여 편에 출연했다. 연극 <품바>는 1대에서 20대까지의 품바를 배출하면서 정규수, 정승호, 박동과, 김기창, 최종원, 김호정, 최성웅, 박해미, 김뢰하, 이재은, 장용철 등의 국내 유명 배우들을 탄생시켰다. 그 가운데서도 9대 품바 최성웅은 역대 품바 중에서도 명인중의 명인으로 손꼽힌다.
무대는 배경에 십장생도 병풍 같은 풍경화가 펼쳐있고, 그 앞에 커다란 독과 작은 독, 그리고 항아리를 배치했다. 항아리 양쪽에는 구걸하는 깡통이 여러 개 놓여있고 그 위에 얼룩덜룩한 모자를 얹어놓았다. 항아리에는 꽃이 꽂혀있다. 무대 상수 쪽에는 고수가 북과 징 등의 타악기를 놓고 연주를 한다. 각설이의 모자와 두건 그리고 의상은 마치 예술작품 같고, 곤룡포와 혼례복도 잘 어울려 돋보이기까지 한다.
극의 내용이 천장근의 일대기와 함께 전개되면서 일제치하, 해방, 그리고 역대 정부가 재담 속에 펼쳐진다. 관객은 역사를 되돌아 생각하게 되고, 극 분위기 창출에 따른 배우의 재담과 흥겨운 노래에 박자와 장단을 맞추고, 가요를 부를 때에는 따라 부르고, 숟가락으로 깡통을 뚜드리며 흥을 돋을 때에는 박수를 치며, 관객은 시종일관 공연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관람을 하게 된다. 주인공은 각설이가 타령을 가르치며 관객과의 소통을 이끌어 가고, 부녀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 각설이의 각시로 등장시켜 혼례장면을 연출해 내기도 하고, 중년여성을 무대로 불러내어 귀에 익은 가요를 부르게 하면서 극의 분위기는 절정에 달하게 되고 1시간 30분간 공연시간을 흥과 낙의 심정으로 극에 몰입하면서 <품바>를 관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