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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북한산 백운대와 원효봉, 만경대, 노적봉, 의상봉, 용출봉, 전경/사진4차산업행정뉴스 서정용 발행인 |
[4차산업행정뉴스=서정용발행인] 성탄절 연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 북한산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기도 고양 지축 파노라마 에티켓을 찾았다.
25일 파노라마 에티켓을 지켜보는 북한산 백운대와 원효봉, 만경대, 노적봉, 의상봉, 용출봉 절경이 파란 하늘에 구름과 조화를 이루어 신령스럽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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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에티켓에서 마련한 크리스마스 튜립과 북한산 전경,/4차산업행정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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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북한산 크리스마스 기념, 경기도 고양 지축 파노라마 에티켓 광장에서 서정용 4차산업행정뉴스 발행인 |
그러던중 1983년,전두환 정권당시건설부(現국토교통부)가 삼각산 일대를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한 후부터는 정부 방침에 따라 각종 방송과 신문 등 출판물, 교육자료에서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민간에서도 이 영향으로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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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삐삐 소향 조남현 화백/4차산업행정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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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삐삐라고 이름난 소향 조남현 화백 |
현재 화백 이면서 전위예술과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시그널아트 창시자, 서양예술학명예박사, 시그널아트협회 대표, 용산예술인총연합회 이사, 한국미술협회 회원, 서울아카데미회회원, 국제펜클럽 회원, 모산펜클럽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그리고 전위예술가, UN평화모델 미즈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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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산 여인의 전설(크기 100호) |
1동은 작업실 2동은 전시장을 꾸며놓고 작업에 몰두하려 했는데 건축법위반이란 이유로 주변의 사람들의 신고가 행정당국에 들어가, 작업실을 만든지 얼마되지 않아 철거 명령이 떨어져 작품 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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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 화백은 당시 하우스작업실에 이른 아침에 도착해 문을 열면 북한산이 정면의 좌측으로는 원효봉 우측에는 의상봉, 그리고 가운데에 노적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뒤쪽 좌측에는 백운대와 우측에는 만경대가 병풍처럼 펼쳐져 한폭의 장대한 풍경화가 파로라마처럼 펼쳐지는 북한산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인사동에서 피카소갤러리를 운영(2013년~2016년까지)하다가 인사동에 갤러리들이 경기가 힘들때고 갤러리 운영경험도 없이 갤러리를 운영 하다보니 적자 운영을 하면서도 나는 화가이고 전위 예술가이고 갤러리 관장으로서 예술인들을 위해 뜻있는 갤러리 운영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예술인들을 위한 아트뱅크를 만들거야라고 늘 말의 씨를 실천 하고 있다고 전했다.어느날 서오능에 있는 작업실을(2010~2013) 집에서 40분거리를 걸어 가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며 걸었다.
왜 사람들이 그림만 그리기엔 아깝다는 말을 할까? 왜 내가 화가로서 부족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것을 하라는 것일까? 울다 웃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문득 화가이지만 화가가 아닌 예술인으로 살라는 뜻이구나 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예술인들을 위한 예술인으로 살라는 사명감을 느끼는 순간 핸드폰 전화벨이 울렸다,
인사동에 참 좋은이들 월간지 발행인이신 김향기대표님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으니 목소리가 이상하다며 무슨 일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걸어오면서 생각한 일들을 설명 했다.
그리고 나는 화가가 아닌 예술인으로 살고 싶다고 하니 김향기 태표님은 그럼 하면 되지 하셨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하자 예술인은 좋은 생각만 하면되고 그 일을 할 수있게 하는 사람은 따로있다며 나에게 기다려 보라했다.
그 이후 일주일후 천도교 회관의 미술관을 운영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지인들에게 얘기를 했다, 한 지인님께서 나에게 충고를 했다, 나의 재산이 무엇이냐고 나는 인맥이라고 말하니 너의 재산을 남들을 위해 애쓰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셨고,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정중히 관장 자리를 거절을 했고 여러번의 갤러리관장 으로 운영 제안이 들어왔지만 사양을 했다. 그쯤 지인이 잠실에 있는 교통회관의 2층 홀에 걸려있는 작품들 서양화가 변종하 화백의 작품을 (제목:사계절)300호×4점1200호를 중간에서 아트딜러로 활동하여 그 작품들을 가나아트미술관에 사계작품을 성사시키면서 목돈을 마련했다.
인사동14길 골목에(현 시가연 자리에)피카소 갤러리를 오픈하는데 올인하며 피카소갤러리는 일반 갤러리들과 다르게 만들자 그래서 피카소갤러리를 전시와 공연 무대 그리고 커피와 와인을 삼합하여 전시회 오프닝 공연을 주1회 2시간씩 와인파티를 하면서 CEO들과 예술인들과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인사동에 예술인들을 위한 아트뱅크와 PP카드제도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인사동 예술인들이 공연하며 와인파티를 한번도 빠짐없이 3년을 했지만 인사동갤러리가 경기가 힘들어지자 예술인들은 철새처럼 떠나가 버렸다, 나는 인사동에서 예술인들을 위해서 아트뱅크를 만들고 싶었는데...그들은 철새처럼 떠나버린 인사동에 내가 있을 명분이 없어졌다.
그래서 예술을 담보로 1억을 대출받아 북한산에 하우스 2동을 임대하여 하우스안에 한동은 갤러리 전시관 50평 , 한동은 작업실 50평을 꾸며 북한산이 바라 보이는 곳에서 작업에 몰두하려 했지만 호화롭고 건축법위반으로 철거명령을 받아 고난의 하루 하루 보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붓을 놓지않고 그림을 그렸다(1.북한산 여인들의 전설/100호2.장닭100호3.자화상50호4.불새100호)나는 늘 좋은 말의 씨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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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은 나의 정원이야! 북한산이 뵈는 내 터에서 예술인들이 예술의 끼를맘껏 발휘할 수 있는 예술인들의 터를 만들거야라는 말의 씨를 심었고 그 말의 씨엔 싹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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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용4차산업행정뉴스대표, 소향 조남현 화백, 김인기 한국화 화백./기념사진 |
지금은 나의 정원 북한산, 그 북한산이 보이는 터에 2025년에는 시그널아트예술원 건립사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전시회도 마련할 계획 이라고 조남현 화백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