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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은혁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의 검증과 본인의 해명

김국우 기자 입력 2025.03.24 11:02 수정 2025.03.24 11:05

김국우 4차산업행정뉴스논설위원

 

지난해 1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헌재 헌법재판관 마은혁 후보자의 질의 답변모습

[4차산업행정뉴스=김국우 논설위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라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했다. 다만 헌재는 마 후보자에게 재판관 지위를 부여해달라는 지위확인 등에 관한 부분은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앞서 국회는 헌법재판관 후보로 정계선·마은혁·조한창 후보자를 선출했으나, 최 대행은 임명을 미루다 지난해 12월 31일 정계선·조한창 재판관만 임명하고 마 후보자의 임명은 보류했다. 마 후보자는 여야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우 의장은 최 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 후보자 3인 중 2인만 임명해 국회의 헌재 구성권.재판관선출권을 침해했다며 2월 3일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12.3 계엄 이후 탄핵 정국은 공수처·법원·선관위 같은 국가기관이 좌파 카르텔문제가 노골화 되었다. 그중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중 3명이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커져왔다.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라는 점이다.

헌재는 자유 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헌재를 좌편향 인사들로 구성을 시도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었다. 더구나 골수 운동권 출신 마은혁 판사를 새 재판관 후보로 밀어붙이고 있다. 

 

마 후보를 임명하지 않는 최상목 대통령 대행에게 “몸조심하라”고 조폭 식으로 협박하더니 탄핵 카드까지 꺼내 들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 대행은 여야 합의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그 진짜 배경은 다르다. 젊은 시절 마 후보는 체제 전복을 꿈꾸던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마은혁은 서울대 정치학과에 81학번이다. 전두환 정권 때, 그는 숨어서 활동하면서 의식화 학습 조직을 잘 이끌었던 운도권의 선두주자였다. 군 제대 후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에 참여해 노동 운동권의 전면에 부상했다.

1987년 결성된 인민노련은 계급 혁명을 추구하는 반체제 조직이었다. 노회찬·주대환 등이 지도부를 구성했다. 기본 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노동자 주도의 민중 봉기를 일으켜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목표였다. 4년 뒤 인민노련은 대법원에 의해 ‘이적(利敵) 단체’로 판정받았었다.

마은혁은 인민노련 출범 때부터 핵심으로 활약했다. 주로 교육·선전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후 공안 당국의 대대적 검거로 조직이 와해되자 마은혁은 진보 정당을 거쳐 34세 나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제도권에 입성한 것이다.

28년간 판사의 길을 걸으며 마 후보가 특별히 문제된 일은 없다. 유일한 논란거리가 2009년 국회 로텐더홀을 점거해 기소된 민노당 당직자들을 풀어준 판결이었다. 이념적 색깔을 드러낸 이 판결은 결국 상급심에서 뒤집혔다.

1980년대 노동 운동의 대부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마은혁이 “결정적 시기에 폭동을 일으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려 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했다.

 

마 후보자가 지금까지 항변도, 해명도 없다. 침묵하는 그를 헌재 재판관으로 하겠다는 민주당의 정체성도 궁금해진다. 마 후보자는 스스로 답할 차례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이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 가운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오는 4월 18일 끝난다. 두 재판관 후임은 ‘대통령이 지명할 몫인데도 아직 후임자 인선은 오리무중이다.

현행 8인 체제에서 두 명의 재판관이 내달 퇴임하면 헌재는 다시 '6인 체제'로 회귀하게 된다. 이 경우 헌재 마비 상태가 재현될 수 있다. 헌재법에 따라 헌재의 사건 심리는 원칙적으로 7인의 재판관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마은혁 후보자는 이제 국민들에게 자기 소신과 제기된 문제점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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