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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행정뉴스=김국우논설위원] 을사오적(乙巳五賊)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의 체결을 찬성한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5명의 매국노를 일컫는다.
당시 대신 중 수상격인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과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은 조약에 반대했고, 궁내부대신 이재극은 이와 직접 관계가 없다.
을사오적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이후 숱한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그 대표격인 이완용은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에게 칼을 맞았다. 이 늑약(勒約)은 왜군을 동원해 강압분위기에서 고종의 윤허 없이 억지로 맺은 불법조약을 의미한다.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은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에서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약 30,000명과 맞서 관민 약 3,500명으로 싸우다 전사했다. 윤흥신(尹興信)은 임진왜란 초기에 부산 다대포 전투에서 800명으로 20배 넘는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부산첨사 정발(鄭發)은 검은 갑옷의 흑의장군으로 1592년 4월 14일 왜군을 맞아 분전을 거듭하다 무인답게 장렬히 순절했다. 송상현, 윤흥신, 정발은 부산 임진왜란 3대 명장인 애국전사였다.
2025년 6월 3일, 보수 국민의힘은 총선 참패 이후 3년 만에 다시 무너졌다. 처음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잘못된 계엄’으로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9회말 투 아웃 위기에서 등판한 김문수 후보는 외롭고 처절하게 싸웠다.
시간이 부족한 조기 대선에서 8% 차로 선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혼신의 숭고한 선거지원과 황교안 후보의 단일화, 이낙연 전 총리·손학규 전 대표 등 원로들의 지지, 나경원·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의 헌신적 유세, 장동혁 상황실장·김재원 비서실장 등의 투혼도 눈물겹다. 이번 선거패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나보다는 당, 당보다는 국가’를 망각한 ‘보수 5적(賊)’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임진왜란 부산 3대 명장과 같은 애국전사도 애국심도 없었다.
동래부사 송상현의 “싸워 죽기는 쉬우나 정권을 내주기는 어렵다”는 결기도 없었다. 다수 국회의원과 샤이보수는 일찌감치 전의를 상실해 을사 5적이 됐다.
한덕수는 ‘무책임한 관료주의의 상징’이다. 권영세-권성동 지도부에 의해 꽃가마를 탈 뻔했다. 그는 절체절명의 국가위기에서 너무나 무기력했다. 반기문과 대동소이 했다. 그의 지혜와 행동반경은 비겁했고, 현실도피의 상징이었다.
홍준표는 배은망덕한 정치인으로 낙인 찍혔다. 그에게 대선후보, 재선의 당 대표, 세 번 시·도지사, 5선 국회의원 영예를 만든 보수당 은덕을 다 차 버렸다.
한동훈은 대통령 탄핵의 공범으로 조기 대선을 만든 배신자의 장본이다. 그는 보수단합을 저해한 핵심 주역이자 무책임한 애송이 ‘불량 정치인’에 불과했다.
이준석은 영원한 ‘분열의 아이콘’이었다. 싸우는 정치에만 능했고 이기는 정치엔 실패한 ‘보수의 패륜아’다. 스스로 보수의 미래를 무너뜨린 중죄인이 됐다.
윤핵관의 핵심 권영세-권성동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막지 못한 책임이 막중하다. ‘후보교체’도 당을 병들게 만든 원죄였다. 자숙하며 백의종군해야 한다.
‘보수패배 5적(賊)’은 보수의 단합과 혁신을 방해하고 분열을 심화시켜 유권자의 신뢰를 잃게 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보수개혁으로 환골탈퇴 해야 한다.
대선은 끝났다.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사법권마저 장악하면 ‘대중독재’ 시대를 막을 길이 없게 된다. 국민의힘은 이미 붕괴 직전이다.
이제 보수는 당을 해체하는 수준으로 새롭게 길을 열어가야 한다. 낡은 기득권을 깨고 정당개혁에 매진할 때다. 국민의힘 당원은 정통 보수의 정체성과 시대정신을 갖춘, 대여 투쟁으로 강한 야당을 이끌 김문수 같은 인물을 차기 당 대표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