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억선생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사회운동가, 시인, 작사와 작곡가, 언론인입니다.
남궁옥선생은 1863년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 격동의 시대에 독립을 위한 일념으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무궁화를 선양한 남궁억선생은 무궁화 묘포를 만들었으며 1933년에는 무궁화동산이라는 노래를 지어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가 8개월만에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가석방된 뒤 1933년9월기독교 계열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십자가당(十字架黨)을 조직, 활동하다가, 1933년12월에 총독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홍천모곡리 무궁화 사건으로 비화 되면서 홍천경찰서로 넘겨졌다가 경성부 서대문형무소로 넘어가 복역했습니다.
남궁억선생은 '무궁화 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무궁화 묘목을 가꾸어 보급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무궁화 묘목 8만주를 불태우고, 구속했습니다.
그뒤 조선총독부 경무국과 학무국의 회유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1935년, 복역 중 병으로 석방되어 개성의 윤치호자택에서 얼마간 요양하다가 고향인 홍천으로 낙향했습니다.
석방된지 4년 만인 1939년 4월 5일 고문 후유증 등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77년 건국훈장으로 국민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한서 남궁억 선생의 묘소는 한서초등학교 바로 뒤에 조성되어 참배했습니다.
인터뷰 ; 남궁윤재 한서남궁억선생기념사업회회장(남궁억선생손자)
한서 남궁억선생의 무궁화사랑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국우(무궁화사랑중앙회 원장, 위대한나라꽃 무궁화 발간)
한서남궁억선생기념사업회는 현재 확보된 5만여평의 부지에 한서 박물관으로 확대하고 무궁화 동산 조성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독지가나 정부가 무관심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4차혁명행정뉴스서정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