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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독자기고/개가 상전이 된 세상?

4차산업행정뉴스 기자 입력 2024.12.05 16:56 수정 2024.12.05 17:03

인재 조 명 철

 

 


[4차산업행정뉴스=4차산업행정뉴스기자]  개를 유모차에 태우고 장 보러 나온 아줌마 영상을 TV에서 보았다. 

 

생소한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놀랍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사람, 개가 어디 아프냐고 비꼬듯 물어보는 사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짓고 가는 사람, 희한한 광경이라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 보는 사람마다 놀란 표정들이다.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개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개 아줌마는 빙그레 미소 지을 뿐 별 반응이 없다.

놀라운 사건 또 하나. 카톡 친구가 기막힌 사진을 보내왔다. 청바지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한 중년 아줌마가 포대기로 개를 업고 길에 나섰다. 애는 끈에 묶여 비뚤배뚤 앞서 걸어간다. 벌건 대낮에 짐승을 업고 거리에 나서다니? 유모차에 태운 것보다 한 수 위다. 사람은 개 자리에 떨어지고, 개는 사람 자리로 올라섰다. 뒤집힌 세상이다. 전도몽상顚倒夢想이란 말이 떠오른다.

나의 어린 시절, 개는 도둑을 지키는 게 전부였다. 배가 곯아 어린 아가의 똥은 개 차지였다. 그래서 똥개란 별명까지 붙었다. 어느 날, 나는 이웃집 개에게 물렸다. 겁에 질려 악을 쓰며 울었다. 주인아주머니도 어머니도 놀라 달려 나왔다. 피가 흐르는 다리에 된장을 발라 천으로 묶는다. 쓰리고 아파 더 크게 악을 쓰며 울었다. 어머니는 혹 넋이 나가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는지 넋 드리는 할멈을 모셔 왔다. 할멈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천지신명이시어 어린아이 조씨 자손 개에 물련 넑 나가수다. 넔 드려줍서! 넋 드려줍서!”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또 하나의 시련은 초등학교 통학할 때다. 통학길엔 덩치 큰 검둥개를 기르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이 가까워지면 먼저 겁부터 나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걸었다. 하지만 검둥개는 천둥 치듯 으르렁거렸다. 겁에 질려 뛰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져 피가 흐르지만, 놀란 토끼처럼 천방지축 뛰었다.

그 시절 광견병까지 번져 개에게 물리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던 시절이다. 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개를 보면 그 어린 시절이 떠올라 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내가 강아지 한 마리 기르자고 제안해도 극구 반대하는 이유다.

개는 여우가 조상이라 한다. 여우는 인간이 사냥한 먹이를 기웃거리다가 인간에게 사육되기 시작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에서 개 뼈가 발견되고 있다. 고구려 벽화엔 개 잡는 그림이 나온다.

중국의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엔 우리 한민족韓民族을 동이족東夷族이라 했다. 칼을 차고, 활을 들고, 사냥하는 유목민족이란 말이다. 개도 데리고 다녔을 것이다. 개는 사냥을 돕고, 양식을 지켜주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개는 신성한 제사에 제물로 바치고 사람의 먹이가 되었다. 조선시대 허준이 쓴 동의보감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케 하고, 혈액을 조절한다.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며, 양기를 북돋운다.’라고 하였다. 개고기는 어느 시대나 보신 보양에 좋다고 하여 개장국 집이 장안에 즐비했다는 것이다.

6.25 남침 전쟁 이후 유엔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서양인들에 의해 개고기 음식문화에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88올림픽 한국 개최를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등으로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제는 세계적인 화두가 되었다. 영국에선 ‘한국 개고기 거래 금지 촉구 청원’에 10만 명 이상이 서명할 정도였다.

따라서 한국 애견 인구가 증가하면서 개고기 식용 반대에 가세함으로써 ‘개고기 식용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2023년 12월 조사에서 “향후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없다”라는 대답이 92.4%였고, 개를 사육 도살 판매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는 데 “찬성한다.”가 82.3%에 이르렀다. 따라서 2024년 1월 19일엔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거나 사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인의 오랜 식습관이 법으로 규제받기에 이르렀다. 거기엔 애견을 넘어 반려견이란 호칭도 한몫했을 것이다.

반려견伴侶犬이란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는 개라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 부인을 타인에게 소개할 때 ‘제 반려자입니다.’라고 말한다. 한 생을 함께할 인생의 동무요, 동반자요, 짝꿍, 비밀 없는 가장 친한 사이다. 반려견은 부인이나 남편과 같은 존재로 상승했다. 산야를 달리며 먹잇감을 사냥하던 자유는 잃었지만, 인간에게 아부해 반려견이란 지위를 얻었다.

개와 사람이 함께 묵는 호텔이 생기고, 개와 함께 식사하는 식당도 생겼다는 보도다. 중앙 일간지엔 미모의 숙녀가 개와 식탁에 앉아 눈높이를 맞추어 식사하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이럴 수가? 인간 존엄이 망가지는 느낌이다. 이는 나만의 생각일까?

매스컴엔 개와 사람이 한 침대에서 잠자는 모습이 방영된다. 개 이빨을 칫솔로 닦아주고 목욕도 시켜준다. 개와 뽀뽀하는 장면도 나온다. 개와 인간의 관계가 너무 깊어졌다. 사람은 사람이고 개는 개인데.

서울에 사는 한 아들이 해외여행을 갈 때면 시골에 사는 노모를 서울로 불러 개를 돌보게 했다는 이야기가 카톡에 돌고 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개 먹이 주는 법, 목욕시키는 법을 가르친다. 해피는 매일 목욕 시켜야 하고, 개 식사는 아침에는 유기농 오리고기, 저녁엔 고급 닭고기를 먹이라고 메모하여 건넨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어머니 이 개는 보통 개가 아니에요. 치와와라고 350만 원을 주고 데려왔어요. 저보다 동호 씨가 더 사랑해요. 저녁엔 공원에 나가 산책을 꼭 시켜주세요.”

아들이 귀국하자 바로 시골로 내려와 버린 어머니, 이웃 친구들이 찾아와 서울에서 어떤 호강을 했느냐는 질문에 개를 보다 왔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동문서답했다는 그 어머니, 가슴이 얼마나 쓰렸을까? 서럽다. 사람보다 개가 상위인 시대, 전도몽상이란 말, 곱씹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제주문학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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