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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선경에서 SK까지…‘노태우 비자금’ 수사가 다시 묻는 정경유착의 그림자

4차산업행정뉴스 기자 입력 2026.08.22 06:57 수정 2026.08.22 07:13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서 등장한 ‘904억 메모’가 수사 단초
-검찰, 김옥숙 여사 자택 등 압수수색…‘선경 300억’ 실체 규명이 핵심
-기업 성장과 권력의 관계 어디까지였나…의혹과 확인된 사실은 구분해야

 

 

                                    출처 chatGPT 이미지

[4차산업행정뉴스=4차산업행정뉴스기자]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이 30여 년 만에 다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21일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서울 연희동 자택과 노태우센터, 아들 노재헌 주중대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관련 재단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비자금 은닉과 조세포탈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수사가 더욱 주목받는 것은 수사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이른바 ‘김옥숙 메모’이기 때문이다.

-이혼소송에서 나온 ‘904억원 메모’
노 관장 측은 이혼소송 과정에서 김옥숙 여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메모를 법원에 제출했다. 메모에는 ‘선경 300억’ 등을 포함해 총 904억원과 관련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 관장 측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1년 최종현 당시 선경그룹 회장에게 300억원을 전달했고, 이 자금이 선경의 경영 활동에 사용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SK 측은 300억원 유입 주장을 부인해 왔다. 따라서 300억원이 실제 선경에 전달됐는지는 현재까지 확정된 사실로 볼 수 없으며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대법원 역시 지난해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300억원의 실제 존재와 전달 여부 자체를 확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한 자금 지원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불법성이 강한 자금은 법적으로 보호할 수 없으며 재산분할 기여도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선경은 언제 대기업이 됐나
이번 사건을 다루면서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선경이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 관계를 맺은 뒤 처음부터 대기업이 된 것은 아니다.

선경은 섬유기업으로 출발해 1970년대 사업을 확대했다. 1976년에는 수출액 1억 달러를 넘어섰고 1977년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필름을 개발했다. 이후 비디오테이프 등 관련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특히 1980년 대한석유공사, 즉 유공을 인수한 것이 그룹 성장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당시 선경은 매출 1천억원대, 재계 10위권 기업이었지만 유공은 1979년 매출 1조원을 넘어선 국내 최대급 기업이었다. 때문에 당시 재계에서는 선경의 유공 인수를 두고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는 노태우 대통령 취임과 최태원·노소영의 결혼보다 앞선 일이다.

따라서 선경의 대기업 성장을 전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사돈 관계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1988년 ‘대통령과 재벌가의 사돈’
그러나 논란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시점은 그 이후다.

최종현 선경 회장의 장남 최태원 회장과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 관장은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했다. 현직 대통령의 딸과 재벌그룹 회장 장남의 결혼은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선경은 이후 정보통신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선경은 자체 기록에 따르면 1984년부터 정보통신사업을 준비했으며, 1994년 한국이동통신 공개입찰에서 약 23%의 지분을 인수했다. 한국이동통신은 이후 SK텔레콤으로 성장해 그룹의 핵심 사업이 됐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도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대통령 사돈기업 특혜’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는 선경과 대통령 사돈 관계를 둘러싼 특혜 시비가 불거졌고, 선경은 결국 해당 사업권을 반납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4년 공개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 지분을 인수했다.

따라서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는 서로 다른 절차라는 점도 구분해야 한다.

-이제 검찰이 밝혀야 할 것은 ‘300억원의 행방’
이번 검찰 수사의 본질은 기업의 성공 자체를 문제 삼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이 실제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어디에 사용됐으며 이후 어떻게 관리됐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특히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대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김옥숙 여사의 ‘904억원 메모’가 실제 어떤 자금의 흐름을 기록한 것인지다.

둘째, 그 가운데 ‘선경 300억’이라고 기록된 자금이 실제 존재했는지와 실제 선경 측에 전달됐는지다.

셋째, 전달됐다면 그 돈이 기업 인수나 주식 매입 등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다.

넷째, 과거 검찰 수사와 추징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추가로 은닉·승계됐는지 여부다.

검찰은 이번 압수수색에서 김옥숙 여사가 관련 재단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진 152억원의 자금 성격 등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의 성장과 권력의 관계, 기록으로 밝혀야

대한민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기업 성장에 기여한 측면이 있는 반면, 정치권력과 기업 간 유착 및 특혜 의혹이 반복됐던 것도 한국 경제사의 어두운 단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사는 한 가족의 이혼이나 재산분할 문제를 넘어선다.

30여 년 전 대통령 비자금의 일부가 실제 기업으로 흘러갔는지, 정치권력과 재벌의 관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객관적인 금융자료와 문서로 확인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사돈이어서 SK가 대기업이 됐다’거나 ‘300억원의 비자금으로 SK가 성장했다’고 현재 단계에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선경은 사돈 관계가 형성되기 전 이미 유공을 인수해 대기업 반열에 올라 있었다. 동시에 사돈 관계가 형성된 이후 이동통신사업을 둘러싼 특혜 논란이 있었고, 이제는 이혼소송에서 나온 ‘선경 300억’ 메모를 계기로 검찰 수사까지 시작됐다.

확인된 역사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의혹을 분리해 추적하는 것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핵심이다.

기업의 성장은 경영능력과 기술, 투자로 평가받아야 한다. 반대로 정치권력의 불법자금이나 특혜가 기업 성장에 개입했다면 그 역시 시간이 아무리 흘렀더라도 기록과 증거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이번 노태우 비자금 수사가 우리 기업사회에 던지는 경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 기사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공개된 법원 판단과 보도, 기업 연혁 등을 토대로 구성했으며, ‘선경 300억원’의 실제 전달 여부는 현재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수사 및 법적 판단이 필요한 의혹임을 밝힌다. /출처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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