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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체육

기고/ 제주도 북촌리, 길 찾는 사람들 이방익 「표해가」를 중심으로

4차산업행정뉴스 기자 입력 2025.02.01 13:37 수정 2025.02.01 13:55

황요범 (전 초등학교 교장)고향을 지키는 팔순지기

 

 

           <표해가(이방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사진 황요범


전라중군 이방익 장군의 표해가는 북촌리 출신 이방익 무관의 단순 표류의 여정과 고난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 타국의 자연환경, 해상교류, 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표해가」는 어떻게 지어졌을까?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수장, 만경현령(萬頃縣令)을 지낸 이광빈의 아들인 이방익은 1757년(영조 38) 지금의 제주시 북촌(뒷개)에서 태어났다. 

 

1784년 무과에 급제한 그는 임금을 호위하던 충장위장으로 1796년 9월 수유(조선시대에 관리에게 주는 휴가)를 얻어 근친 차(우도에 있는 어머니 모를 북촌 선산으로 이장하기 위해) 고향 제주로 향했다. 

 

이때 일행 7명(사환, 선주, 마을사람)과 우도로 건너가 이장 절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뱃놀이를 즐기게 된다. 바다에 비쳐드는 풍광에 흥에 겨워 놀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바람이 몰아친다. 풍랑이 거칠어지자 순식간에 배가 요동을 친다. 돛대와 삿대마저 부러진 배는 기약 없이 떠내려간다. 

 

표류 16일 만에 대만의 팽호도에 표착하게 되고 이후 중국 내륙지방, 북경(北京), 요동벌판, 압록강을 거쳐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오기까지의 265일간의 고행담을 자세히 술회한 작품이 바로 표해가이다.



▢ 생사의 기로에 섰던 표류기

‘밤은 점점 깊어가고 풍랑은 더욱 심하다. 만경창파 일엽선이 가이없이 떠나가니 슬프다 무슨 죄로 하직 없는 이별인고’ 표해가의 원문을 살펴보면 표류 당시 이방익의 심경을 들여볼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이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감정이 표현된다.

 
어복 속에 영장(물고기의 배 속에 장례를 치르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넘어서서 그토록 원통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아픔도 묘사된다. 

 

한편, 자포자기한 상태에서도 표류 중에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린 비를 마시는 장면, 선판에 뛰어든 검은 생선을 생으로 토막 잘라 8명이 나눠 먹고 목숨을 보전하는 장면 등은 위험한 풍랑에 휘말리게 된 후의 긴박한 상황과 위기 속에서 감정적 혼란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우연 또는 운명, 생존과 새로운 만남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절망하던 찰나, 긴 고립과 불확실한 혼란 상황에서 중국인들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 후 음식을 제공받으며 생명의 구원을 받는다. 또한 중국의 권위있는 관공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는 큰 집을 묘사하며 문화적 충격과 함께 중국문화의 엄숙함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눈에 보인 중국인들의 의복을 통해 중국의 세련된 복식과 화려함도 표사하고 있다. 이후, 대만, 강남(江南), 베이징, 의주, 만주 등 이국적 환경에서 느끼는 문화적 차이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하기도 했다.

▢ 표해가가 후세에 미친 영향

 
이방익이 고국으로 돌아와 표류기간 동안 겪은 감정의 흐름과 타국에 관한 고찰을 드러낸다. 또한 자신이 겪은 위험과 그로 인해 얻은 교훈도 담고 있다. 표류 중 여러 번의 생사의 갈림길을 겪었고, 그때마다 천행(하늘의 은혜) 덕분에 살아났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존재를 낮추는 겸허한 태도가 묘사된다. ‘운수도 기이할사 전화위복’처럼 이방익은 자신의 운명이 기이하게 흘러갔음을 고백한다. 그는 수많은 고난과 위험속에서도 결국 비분지직(자신의 분수를 넘는 직책)을 맡는 등 좋은 결과를 가져왔음을 말한다. 그 와중에 ‘호장한 표해 광경을 후진에게 전하고 싶다’ 하여 자신의 겪은 경험과 교훈을 후대에 전달하려는 의도는 후손이 본받아 마땅할 정신이다.


▢ 과거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며 미래의 나침반이다.

18인의 무과 급제한 장군의 마을, 4․3 최대 참사의 현장, 그 속에서 150여 홀어머니들이 폐허의 마을을 일으켰던 무남촌의 여자 마을, 북촌리.

나라에는 국사가 있고, 고을과 고을, 마을과 마을에는 저마다의 크고 작은 삶의 흔적들이 있다. 

 

권무일씨가 ‘이방익 표류기’를 발간하며 18세기 말 제주바다에서 표류해 중국의 대만 해협을 거쳐 중국 강남을 답파한 제주 출신 이방익의 삶을 재조명했다. 

 

제주인으로서 이방익 작품에 대한 연구, 표착 시 중국 내 이방익의 행적을 탐방하는 것, 기념사업 등을 통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닌가 생각든다. 그것이 우리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북포(북촌리)를 지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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