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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사적비. 비문에는 한성부 판윤 이채연과 영국인 고문 브라운의 협력 아래 내부 토목국장 남궁억 선생이 길을 넓히고 공원을 처음 만들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4차산업행정뉴스 |
[4차산업행정뉴스=서정용발행인] 3·1독립만세운동의 성지인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사적비에 독립운동가 한서 남궁억 선생이 공원 조성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는 사실이 본지 현장 취재로 확인됐다.
chatGPT 정보에 따르면 사적비에는 1897년 한성부 판윤 이채연과 탁지부 고문 영국인 브라운의 협력 아래 “내부 토목국장 남궁억이 길을 넓히고 공원을 처음 만든 지 70년이 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무궁화 보급과 민족교육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남궁억 선생이 대한제국기 서울의 도로 정비와 근대공원 조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비문 말미에는 단군기원 4300년, 즉 1967년 12월로 적혀 있으며 노산 이은상이 글을 짓고 서예가 김충현이 글씨를 썼다.
따라서 이 비석은 공원 조성 당시의 원문서가 아니라 약 70년 뒤 탑골공원의 역사를 정리해 새긴 기념 기록이다. 정확한 공사 과정은 당시 신문과 행정자료를 함께 대조해야 한다.
남궁억 혼자 만든 공원 아니었다
비문에 직접 등장하는 공원 조성 참여자는 세 사람이다.
이채연 한성부 판윤은 오늘날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한성부의 책임자로 도로 정비와 위생·교통 등 서울 근대화 사업을 이끌었다.
영국인 존 맥리비 브라운은 총세무사와 대한제국 재정고문을 지낸 인물로, 원각사터에 서양식 공원을 만들 것을 건의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남궁억 선생은 당시 ‘서울시 토목국장’이 아니라 정확히는 정부 조직인 내부 토목국장이었다. 국가보훈부 자료에도 남궁억 선생이 종로와 정동 일대의 도로를 정비하고 파고다공원을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대한제국 초기 한성 도시개조사업에는 내부대신 박정양과 한성부 소윤 이계필 등 개화 관료들도 참여했다.
다만 이들이 탑골공원 공사에 직접 관여했는지는 별도의 사료 확인이 필요하므로, 비문에 이름이 적힌 이채연·브라운·남궁억과는 구분해 기록해야 한다.
원각사를 공원으로 바꾼 것은 아니다
‘남궁억 선생이 원각사를 파고다공원으로 만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고려시대 흥복사 자리에는 조선 세조 때 원각사가 크게 중창됐지만 1504년 폐사됐고, 1514년에는 건축물마저 대부분 해체됐다.
이후 민가가 들어섰으며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만 남아 옛 절터임을 전했다.
19세기 말 대한제국 정부는 이 일대의 민가를 정리하고 부지를 확보한 뒤 석탑을 중심으로 울타리와 나무, 의자 등을 설치해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꾸몄다.
따라서 ‘원각사 건물을 공원으로 전환했다’기보다 ‘원각사가 사라진 옛터를 정비해 공원을 조성했다’고 쓰는 것이 정확하다.
1897년 개원 기록…1899년 본격 공사 가능성
국가유산청의 공식 연혁은 1897년 원각사터가 남궁억 토목국장에 의해 소공원으로 개원됐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는 공원 조성에 관한 당대 기록이 충분하지 않으며, 1899년 4~5월에도 석탑 주변 가옥 철거와 보상 문제로 주민과 정부가 갈등했다는 당시 신문 보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1897년을 공원 조성의 계획 또는 초기 개원 단계로 보고, 1899년 전후 부지 정리와 공사가 본격화됐을 가능성을 함께 열어두는 것이 타당하다.
공원 조성 시점과 브라운의 설계 여부 역시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여러 기록을 통해 전해지는 내용이라는 점을 밝혀야 한다.
공원은 처음부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울타리와 나무를 두는 정도였으며 이후 시설이 단계적으로 확충됐다.
1902년에는 건축가 심의석이 공사를 주도한 팔각정이 세워졌고, 1900년대 들어 황실 군악대 관련 시설도 들어섰다. 일제강점기에는 화단과 연못, 산책로, 전등, 수도 등이 추가됐고 1913년부터 평일에도 시민에게 개방됐다.
근대공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의 성지로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이곳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서울 전역과 전국으로 확산됐다. 탑골공원은 단순한 근대식 공원을 넘어 민족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현장이 됐다.
파고다공원·탑동공원 등으로 불리던 이곳은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탑골공원으로 명칭이 확정됐다. 2011년 국가유산 명칭은 ‘서울 탑골공원’으로 변경됐다.
현장에 남아 있는 사적비는 남궁억 선생을 무궁화운동가와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해 온 역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의 도로를 정비하고 근대도시 공간을 만든 행정가로도 조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계기관도 공원 조성에 참여한 인물과 연도별 과정을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판과 교육자료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