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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염세주의 대표 독일철학자 쇼펜하우어 웃음론의 채플린적 통찰

김국우 기자 입력 2026.05.12 10:51 수정 2026.05.12 10:59

김구구우 4차산업행정뉴스 논설위원

 

 

 

                   전설의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

[4차산업행정뉴스=김국우논설위원]     찰리 채플린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라고 했다. 

 

그 말이 나오기 대략 100년 전쯤,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똑같이 희비극에 빗대면서도 정반대로 말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전체를 개관하면 비극이다.”라 말했다. 채플린의 원근(遠近)을 뒤바꾼 셈이다.

전설의 코미디언(영화감독, 영화배우)찰리 채플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은 평생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었다고 했다.


쇼펜하우어는 현대철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세계적 철학자이다. 그의 대표작 이 책은 본격적인 학술서로서 읽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찰리 채플린이 정말 이 책을 본격적인 학술서로 반복해서 읽을 만큼 철학적 소양을 가졌는지를 차치하더라도 이 책에는 찰리 채플린이 정말 평생에 걸쳐서 자신의 웃음철학에 뿌리는 두었을 ‘웃음론’이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베르그송은 철학자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쇼펜하우어 계승자였고, 프로이트(철학자는 아님)도 쇼펜하우어에서 현대사상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 둘 역시 웃음에 관한 저술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 핵심을 전달하고자 했다.

쇼펜하우어(1788~1860)는 칸트의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되, 올바르게 계승했다고 한다. 염세주의를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낙관주의자라면 칸트는 비관주의자이다. 쇼펜하우어 추종자인 프리드리히 니체나 쇼펜하우어학회의 창립자들도 그의 재치와 천성적 유머를 무시했거나 놓쳤다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웃음은 언어의 대가로서 풍자와 결합한 예리한 통찰력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는 웃음이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지성'과 머릿속으로 규정하는 '이성' 사이의 어긋남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의도적으로 서로 다른 상황을 하나의 언어로 묶는 '기지'와, 낡은 규칙을 맹신하다 현실과 충돌하는 '바보스러움'이 유머의 대표적 형태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성의 틀에 갇혀 웃음을 잃기 쉬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사람이 되려면 현실에 대한 예민한 관찰력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작은 자극에도 무뎌지며 삶의 무게감 때문에 크게 웃을 일이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 곁의 '재미있는 사람'은 갈수록 소중한 존재가 된다. 과연 인간이 느끼는 재미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떨 때 웃음을 터뜨리게 될까?

쇼펜하우어의 '웃음론'은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현실과 머릿속의 규정한 개념 사이에서 웃음이 피어난다고 봤다. 철학적 통찰의 바탕은 유머의 본질이다.

이 웃음론은 먼저 그가 정의한 '지성'과 '이성'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지성이란 감각을 통해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반면 이성은 그런 정보를 조각내어 '개념'이라는 언어의 틀 속에 밀어 넣고 규정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는 지성과 이성 관계를 그림과 모자이크 관계에 비유한다. 지성이 눈앞에 펼쳐진 산의 풍경을 연속적인 아날로그 그림으로 본다면, 이성은 그 풍경을 모자이크처럼 뚝뚝 잘라 '눈', '산', '겨울' 같은 개념으로 작업을 한다. 이성은 결코 지성이 파악한 생생한 현실을 완벽히 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웃음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 '기지(Witz, 재치)'와 '바보스러움'이다. 매번 다른 위기 상황을 한 개념으로 절묘하게 묶어낼 때, 그 기지에 감탄하며 우리는 웃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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